
안녕하세요. 에이프린트입니다.
오늘은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그 시대를 반영했던 의미있는
선거 벽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52년 2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승만 후보의 벽보는 가로 55cm, 세로 80cm.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큰 종이인데, 내용은 온통 세로쓰기 한자였습니다. 한글이 아니라 한자로 쓰인 벽보를 국민들이 얼마나 읽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게 당시의 '공식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름 앞에 꼭 붙는 '박사'라는 호칭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엔 엄청난 후광효과였습니다. 미국을 이긴 나라는 없던 시절, '미국 박사'라는 타이틀이 곧 능력 증명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3년. 나라는 폐허였고, 사람들은 굶주렸습니다. 이 시대의 절박함을 가장 잘 담은 한 줄짜리 슬로건이 민주당 신익희·장면 후보의 벽보에 등장했습니다.
다섯 글자와 다섯 글자. 학자들은 이 구호를 한국 선거 역사상 가장 임팩트 있는 슬로건으로 꼽습니다. 어려운 말 하나 없이, 국민의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했습니다. 이 구호는 지금도 패러디되고 회자됩니다.
비극은 신익희 후보가 선거 유세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 이미 세상을 떠난 후보에게도 표가 몰렸을 정도로 이 구호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슬로건은 "명랑한 생활과 편리한 살림을 위해 황소처럼 뛰겠다"였습니다. 당 로고에도 황소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었죠.
그런데 여기서 민중당 김준연 후보가 기가 막힌 한 수를 두었습니다. 정책도, 비전도 없이, 벽보에 딱 한 줄만 적었습니다.
어떤 공약도 없습니다. 오직 박정희를 '병든 황소'로 규정하는 한 문장. 현대식으로 말하면 원조 네거티브 전략입니다.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벽보였습니다.

1956년의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변형된 형태가 1967년 군소후보 오재영 후보의 벽보에 등장했습니다.
1956년 구호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절박합니다. '죽기 전에'라는 표현은 당시 실제로 사람들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방증입니다. 이 구호를 어릴 적 기억하는 분들은 "너무 절실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하십니다.
오재영 후보는 낙선했지만, 이 구호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문장으로 선거사에 남아 있습니다.

1971년 대선, 다른 후보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벽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의당 진복기 후보입니다. 양쪽 끝이 위로 굽어 올라간 '카이저 수염'을 기르고, 근엄한 표정으로 벽보에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공약이 더 화제였습니다. 핵심 공약은 두 가지였는데요.
신안 해저에 가라앉은 중국 고대 선박의 보물을 발굴해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실제로 신안에서 보물선이 발굴되긴 했습니다 — 1975년에요.) 두 번째 공약은 '북진 전쟁을 통한 통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결의 공약을 들고 나온 진복기 후보는 득표율 1.03%를 기록하며 낙선했습니다.

1987년 13대 대선은 두 가지 역사적 '최초'를 기록한 선거였습니다. 하나는 흑백에서 총천연색 컬러로 바뀐 첫 번째 선거 벽보. 그리고 또 하나는 대선 벽보에서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사진을 사용한 후보의 등장입니다.
그 주인공은 노태우 후보입니다. 씩씩하게 팔을 들어올린 역동적인 포즈와 함께 환한 미소를 벽보에 담았습니다. 유세장에서도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고 외치며 따뜻한 이미지를 앞세웠습니다.
그 이전까지 모든 후보는 벽보에서 근엄하고 무표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웃으면 '경박해 보인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태우의 미소 벽보는 이 공식을 깨버렸고, 이후 대부분의 후보들이 미소 사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14대 대선에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벽보가 있었습니다. 무소속 김옥선 후보입니다. 수십 년간 남장으로 살아온 그녀의 벽보는 전형적인 남성 정치인 복장에, 위아래로 선명한 분홍색을 대담하게 배치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공약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후보들이 저마다 화려한 공약을 내세울 때, 김옥선 후보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른바 '무(無)공약 선언'입니다. 빈 약속을 남발하는 정치권에 정면으로 일침을 날린 셈입니다. 득표율은 0.36%에 그쳤지만, 이 문장은 지금 봐도 날카롭습니다.

1996년 총선. 부산 사하구에 나온 27살의 민주당 조경태 후보는 말 그대로 파격을 택했습니다. 선거 벽보에 상반신 누드 사진을 실은 것입니다.
슬로건은 "감출 것 없는 정치", "거짓 없는 정치". 자신의 신체를 공약의 메타포로 활용한 것인데, 이 아이디어 하나만은 확실히 주목받았습니다.
결과는 낙선. 하지만 이 벽보는 역대 '가장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벽보'로 선거사에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그 조경태 후보는 이후 꾸준히 도전해 현재 7선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당시 초등학생들이 주문처럼 외우고 다닌 구호가 있었습니다. 호국당 기호 6번 김길수 후보의 슬로건입니다.
법복을 입고 벽보에 등장한 승려 출신 김길수 후보. 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포즈로, 득표율 0.2%라는 미미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기억에 새겨졌습니다.
이 구호는 이후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패러디됐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됩니다. 한국 선거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낙선 후보의 슬로건'으로 등극했습니다.


2016년 총선. 서울 서초을에 출마한 김수근 후보의 벽보에는 후보자 얼굴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박근혜 탄핵소추안' 전문이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사진 대신 문서로 채운 벽보, 선거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발상이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벽보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충격을 줬습니다. 단발머리, 금테 안경,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레터링.
이 한 마디가 벽보 전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습니다. 구호가 도발적이라며 벽보를 훼손하는 사건이 전국에서 발생했고, 반대로 이 벽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보호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득표율 4위. 선거가 끝난 뒤 이 벽보를 주제로 한 책이 출간될 정도였습니다.
선거 벽보는 단순한 홍보물이 아닙니다.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그때의 사회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고스란히 그 시절의 시대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벽보 한 장, 결코 가볍게 만들 수 없습니다.
에이프린트는 선거 벽보부터 선거 홍보물까지,
후보자의 얼굴과 메시지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정성껏 함께 만들어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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